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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역사 직시와 미래지향, 韓日관계 리셋의 출발점
  글쓴이 :      날짜 : 19-08-15 06:25     조회 :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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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1965년 국교수립 이래 최악인 상황에서 광복 74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이후 악화일로를 달려온 한일관계는 지난달 초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서면서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 곤두박질쳤다. 역사·외교 이슈에 경제를 끌어들인 아베 신조 정권의 수출규제는 부침을 거듭하며 어렵게나마 협력을 이어온 한일관계의 불문율마저 깨버렸다. 뚜렷한 해법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광복절’은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이다. 광복 이후 74년이 흐르면서 전후(戰後) 세대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지만 양국 관계에서 과거사는 결코 덮거나 지워버릴 수 없는 요소다. 일본은 평화헌법 체제하에서도 끊임없이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를 추구했고, 과거사에 대해 지식도 부채감도 희박한 세대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반면 한국은 전후세대를 포함한 국민 다수가 일제강점기를 생생한 현재형 역사로 가슴에 새기고 있다.

한일 양국은 외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숙명적 이웃이다. 어렵게 이뤄온 협력관계를 되살리고 미래를 향해 함께 가야만 한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갈등을 자꾸 증폭시켜온 양국 정치권과 달리, 민간에서는 차분하게 현실 타개를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과 해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게 들린다. 당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말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관계”로 화답했다. 일본에서는 지난달 하순부터 지식인 78명이 나서 ‘한국이 적인가’ 제하에 자국 정부에 수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일 모두 혐한, 반일 등 감정적 대립을 자제하고 양국관계의 성숙한 업그레이드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국민들 사이에 감정적 대립이 벌어지면 미래 자산을 갉아먹는 결과가 된다. 민간교류와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다. 양국이 등 돌린 동안 국제정세는 신냉전을 예고할 정도로 얼어붙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도 한일 간의 협력은 절실하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고, 내년에는 광복 75주년을 맞는다. 한일 양국이 역사에 두 발을 단단히 딛되 새로운 미래를 능동적으로 열어가는 미래지향적 관계로 리셋해야 한다.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전환점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한국은 미래를 지향하는 열린 자세를 보이는 것, 그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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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북한 벗어나야 추적 피한다 생각, 이틀 안에 국경 넘어가기로… 기차 환기통에 매달려 국경선 역까지유대열 목사(오른쪽 두번째)가 1997년 12월 강원도의 한 군부대에 안보 강의 차 방문했을 때의 모습.

북한을 떠나는 내게 제일 큰 문제는 이틀 안에 북한 영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무단결근을 하면 즉시 행방을 추적하고 조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특별한 경력이 있기에 더 신속한 추적과 조사가 진행될 것이 분명했다. 이틀 내로 압록강 국경도시인 자강도 만포를 거쳐 중국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북한에서는 자기가 사는 시·군의 경계를 벗어나려면 안전부(경찰서)에서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추적과 조사를 피하고자 통행증을 발급받지 않았다. 이 경우 기차를 탈 수 없다. 하지만 기차를 타야 만포까지 하루 안에 갈 수 있기에 난 기관차 조종실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역전 표 내는 곳에서 통행증을 검열하는 안전원(경찰관)에게 약간의 돈을 건네면서 “손님을 배웅하러 잠깐 승강장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그 길로 바로 기관차 조종실로 갔다. 노크하고 들어서자 쉰 살 가까운 기관사와 젊은 조수가 있었다. 놀란 그들에게 “이곳 시 행정경제위원회 지도원인데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러 평북 희천에 가는 중이다. 그런데 통행증을 발급받지 못해 할 수 없이 폐를 끼치게 됐으니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

미리 준비해 간 좋은 음식과 돈도 조금 건넸다. 그렇게 오후 1시쯤 얻어 탄 기차는 북쪽을 향해 3시간 정도 달렸다. 중간에 김정은이 탄 ‘1호 열차’를 먼저 보내느라 2시간이나 지연됐다. 예정보다 훨씬 지체된 저녁 7시가 넘어서 희천에 도착했다. 기차가 황해도 사리원 기관차대 소속이라 희천에서 기관차를 교체한 뒤, 기관사는 사리원으로 복귀해야 했다. 나는 조종실에서 내려 객차 안 화장실 칸에 숨어들었다.

여기서 오래 있을 수는 없기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했다. 집을 떠나며 추억이 될 만한 사진 몇 장과 물건 몇 가지를 배낭에 넣고 나왔는데, 검문에 걸리면 내가 탈북하려는 게 탄로 날 것은 분명했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사진을 잘게 찢어 밖으로 버렸다. 소지했던 물건도 모두 버렸다. 그때 모든 걸 버리다 보니 지금 내겐 고향을 추억할 만한 사진 한 장, 물건 한 점이 없다. 지금도 그때 너무 떨지 말고 사진 몇 장이라도 끝까지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달리는 기차의 객실 문을 열고 지붕으로 기어 올라갔다. 검문 안전원들에게 체포되지 않으려면 위험해도 기차 지붕에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붕에 있는 객실 환기통을 두 손으로 꽉 쥐고 납작 엎드렸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기차가 역전에 들어서 정차할 때 경비대원들에게 발각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1호 열차’로 인해 시간이 지연됐기에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결국 ‘1호 열차’ 통과가 나의 탈북을 도운 셈이다. 조명시설이 좋지 않은 북한의 역사도 나의 탈북을 도왔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기차에 이상이 없는지 살피는 경비병이 있었는데 그들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무사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기차 지붕 환기통에 매달린 채 5시간 정도를 더 갔다. 이윽고 만포역이 희미하게 보이자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만포역은 국경선 역이라 다른 곳보다 경비가 몇 배나 삼엄했다. 기차에서 뛰어내리며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곧장 만포 시내로 들어갔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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