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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날짜 : 19-08-14 14:50     조회 :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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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서 공부하는 아들 배 곯을까봐 당신들 앞으로 나온 식량 증서 내주고 화전 일궈 감자로 끼니만 때우셔유대열 목사(화살표)가 1998년 11월 28일 서울 송파제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후 세례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만 들어가시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끝내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셨다. 25년 전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다. 어머니는 아마 내가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을 짐작하셨을 것이다.

길을 떠나기 며칠 전 나는 짐을 모두 정리하며 이상한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은 다 태워버렸다. 그중 하나가 중국에서 유학할 때, 어느 남한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영한사전이었다. 이 사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보위부에서는 이미 ‘사상이 변한 자’로 판단할 것이고 부모님께 더 큰 형벌을 가할 게 분명했다.

사전을 집 뒤에서 몰래 불태우고 있는데, 어머니가 보시곤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사전을 왜 태우는 것이냐. 혹시 너 아예 떠나려는 거 아니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런 일 없다고 서둘러 얼버무렸다. 그 후 지금까지 부모님 소식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떠난 후 부모님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심한 악형을 당한 건 아닌지, 아직 살아계시는지 궁금하다. 부모님께 나는 너무 큰 죄인이다.

부모님은 오랫동안 북한정권으로부터 피해를 본 분들이다. 작은할아버지는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시고 아버지도 장군의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의 하역부로 추방당하셨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아버지는 심장병을 얻어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 나는 집에다 ‘량권’을 보내 달라고 종종 부탁했다. 량권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돈과 함께 내야 하는 증서 비슷한 것이다. 동기들은 모두 부유한 집 자제들이었기에 배고픔을 몰랐지만, 객지에서 혼자 공부하는 난 늘 배가 고팠다.

부모님은 그때마다 아무런 말도 없이 편지봉투 속에 량권을 넣어 보내주시곤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간 어느 날이었다. 더위를 식히려 앞마당에서 등목하는 아버지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 배 위에 난 수술 흉터를 보게 됐다. 아버지는 황급히 수건으로 가리시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머니를 통해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이 대학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자신들 앞으로 나오는 식량 배급을 거의 모두 량권으로 바꾸셨다. 그것을 내게 보내주시고는 화전을 일궈 감자 농사를 지어 식량을 대신하셨다. 어느 가을, 수확한 감자를 손수레에 싣고 산비탈을 내려오던 아버지가 산에서 굴러떨어지며 배를 다치셨는데 장이 파열됐다. 병원에 실려 가 수술을 받았지만, 북한의 의술이 좋을 리 없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자식을 위해 굶주리셨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분들이었다. 두 분만 생각하면 늘 목이 멘다. 너무나 그리워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 잘 살아 계신지요?’

부모님께 큰 죄를 지어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이따금 아내에게 들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아내는 “여보,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에요.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일생을 드려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버님, 어머님을 보호해주시지 않겠어요”라고 이야기해준다. 나는 아내의 그 말을 믿는다. 그리고 그 말에 큰 위로를 받곤 한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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