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2-11 23:46
[매경데스크] 쪼개는 김정은 모으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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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쪼개기의 명수다. 강자와의 협상에서는 쪼개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는 확신도 갖고 있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도 쪼개기로 일관했다. 핵탄두, 핵시설, 미사일, 핵 리스트, 핵 기술자 등 북한이 협상에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잘게 쪼개 놨다. 각각에 대해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만반의 준비도 갖췄다. 핵시설을 없애는 대신 체제 보장을 요구하고, 경제 지원을 전제로 미사일 시설을 파괴하는 식이다. 비핵화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고 각 단계에 상응하는 조치가 없으면 협상을 중단시키고 그 탓을 상대방에게 돌린다. 수십 년간 북한은 이 같은 방식을 되풀이했고 쪼개기 전술은 경지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으기의 달인이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모아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협상을 할 때 크게 생각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을 성공의 비결로 꼽는다. 협상 중에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했던 것을 갑자기 들이대 상대를 당황시키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탁월하다. 한국과 무역협상을 하면서 미군 철수를 들고나와 이익을 챙겼다. 관세 문제로 시작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군사적 목적의 기술 탈취를 걸고 넘어졌고 중국 기업 화웨이 제재를 위해 유럽 국가를 총동원했다. 과거 부동산 업자 때부터 다져온 모으기 기술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될 미·북정상회담도 쪼개기와 모으기의 싸움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과정을 최대한 쪼갤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쪼개는 단계와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고 할 것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지난주 실무협상을 통해 비핵화 각 단계에 상응하는 보상 리스트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마지막 남은 미·북 정상 간 담판에서 이 단계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두 사람의 담판은 향후 그들의 운명과 직결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의 단계와 시간을 대폭 줄이면 정권의 몰락을 앞당길 것이라는 위기감에 싸여 있다. 반면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쪼개는 단계가 많아지고 기간이 길어지면 협상의 실익이 없다. 이번 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김정은에게 놀아났다'는 비판과 함께 정권의 레임덕도 가속화될 게 뻔하다.

미국 내에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과 국제 제재로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김정은 위원장 모두에게 협상 합의문은 절실해 보인다. 그래도 '쪼개기'와 '모으기'를 서로 고집하는 한 한쪽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이번 협상은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쪼개놓은 비핵화 단계를 줄이고 적절한 보상을 제시하는 선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라는 명분을 얻고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적 실리를 챙기는 시나리오다. 정상회담 한두 번 했다고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리 없고 자신의 운명도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만들어 줄 수도 없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역사에 기록될 회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성과를 과장하는 것은 금물이다.

걱정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1박2일 동안 김정은 위원장을 어르고 달랠 수많은 카드가 들어 있다. 거기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철수 등 우리의 안위와 직결된 것들도 포함됐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협상에서 어떤 카드를 꺼낼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해 6월 1차 미·북정상회담에서는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한국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꺼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전력도 있다. 성과에 급급해 이번엔 더 센 카드를 내밀지 모를 일이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적당히 쪼개고 모으는 걸로 결말이 나고 한국이 장기판의 말처럼 그들의 협상 카드로 활용된다면 최악이다. 독대를 통해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결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성 때문에 더 불안하다. 남은 기간 우리가 외교력을 총동원해 막아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노영우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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