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 들어나게 예수님을 배신(부인)한 대표적인 인물이 가룟 유다와 베드로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겼고, 베드로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난받고 있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이들 두 제자의 죄질은 물론 가룟 유다가 흉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피는 죄질의 크고 작음에 따라 속죄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를 동일하게 취급해 속죄하십니다. 즉 어떤 죄를 저질렀든 간에 후회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용서가 되지만, 단순히 후회만 하고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후회는, 자신이 행한 일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는 것으로만 끝내고 자신이 저지른 죗값에 대한 형벌을 가룟 유다처럼 스스로 자결(심판)하여 자살하거나 또는 종북 반역 세력들처럼 다른 어떤 공로를 내세워 지금껏 저지른 악행에 대한 죗값을 상쇄받고자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행한 일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깨달아 뉘우치고 그 죗값에 대한 심판(형벌)을 피해자 되신 분에게 나아가 그분으로 하여금 자기 잘못(죄)에 대한 처벌을 전적으로 맡겨 회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수시로 이웃에게 피혜끼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즉 무지무능과 착각과 곡해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혜를 끼치게 하거나 억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웃들에게 사소한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대체적으로 "죄송합니다."라는 회개의 말을 건넵니다. 그럴 땐 이웃들도 그 정도의 실수는 자신들도 다른 사람들이나 하나님께 수시로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괜찮습니다."라는 말로 이해해 줍니다. 이런 일(장면)은 인간들만이 행할(펼칠)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나 종북 반역 세력들 같은 자들은 아무리 자신들의 행동이 흉악하다는 것을 깨달아도 피혜를 당한 이웃들에게 회개(사죄)하지 않고, 자기 잘못에 대한 죄책을 자기 스스로 자살해 자결(심판)하거나, 아니면 김일성 일가들처럼 다른 무모한 업적을 내세워 지난날에 저지른 모든 과오가 이 같이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되레 자랑(변명)하려 합니다.
이들은 모두 사단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저들은 자기 잘못에 대한 후회는 할지라도 회개할 줄은 모릅니다. 사람이 누구에게 행한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사죄)하지 않는 것은, 그 피혜자를 자신과 같은 존귀한 자임을 인정치 않고 다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낱 소모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자신보다 지능지수가 낮은 사람들을 속여 죽이고 난 후 그 죄벌이 참혹한 지옥형벌이라는 것에 대해서만 후회할 줄 알 뿐, 사람들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 줄 수 없어서 지금껏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회개(사죄)하지 않습니다. 치한이 남의 부녀자를 겁간하는 것은 가하여도 자신의 자매가 남에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취급하는 짓과 같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해 그를 팔아 처분하고 얼마 못가 그 일이 심히 부끄러운 짓임을 깨닫기는 하였으나, 그의 심중에 자리 잡은 사단은 여전히 가룟 유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범죄가 되도록 하기 위해 더 이상 살아가는 것은 죽음보다 못하다 하여 목매 죽도록 합니다. 이처럼 사단에게 속한 자들은 일평생 속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팔아 먹은 가룟 유다의 범죄나,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획해 사형판결에 넘겨 준 사울의 범죄나 모두다 오십보 백보 수준의 동일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할 일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지옥판결을 받게 되었고, 사울은 자신의 행한 일이 몹쓸 죄악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자신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오늘날의 목사들이 교인들을 예수님(성령)과 함께 하여야 할 거룩한 성도로 보지 않고 김일성 일가들처럼 자신들의 야욕을 성취하기 위한 한낱 총포탄(소모품)으로만 사용하려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린도후서 12:14) 하셨는데, 이 시대의 목사들은 교인들을 자신들의 의식주 문제와 명성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려 할 뿐, 저들의 영혼을 하나님(성령)께 맡기어 자유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헌금 많이 내는 일만 강조하고 성령의 지도를 무시하게 합니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명기 23:18) 하심 같이,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 곧 음란방탕과 불법불의한 수법으로 취한 재물들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말씀은 강조해 가르치지 않고, 자신들의 의식주 문제와 또 세계 제일의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빚을 내서라도 헌금하라고 강요합니다. 예수님(성령)과 함께 경건하게 사는 가난한 신앙인이 될지언정 마귀와 함께 불의와 거짓으로 치부하게 되면, 그게 바로 회개와 담을 쌓는 가룟 유다의 막가파 행동이며 종북 반역 세력들의 끊임 없는 거짓과 도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7:10) 하심 같이, 신앙인들의 유일한 근심이 바로 후회할 일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입니다. 회개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 바로 천국 가는 노정(路程) 곧 참된 신앙생활일 뿐, 교회당 안에서 의식적으로 행하는 일회성의 회개에 의해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으로 모든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범죄하는 자들은, 모두다 가룟 유다나 유벙언 같은 교주나 종북 반역 세력들 같은 자들로 회개와 담을 쌓은 반역의 졸개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무얼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느냐 하는 세상 근심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뜻(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성령의 근심으로 자신의 영을 거룩하게 깨끗하게 하는 일에 전심전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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