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4-17 03:04
[역경의 열매] 강효숙 (3) 사람 볼 줄 모르는 이 나라, 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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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신문사 수습으로 일하다 여자라고 무시해 2주 만에 그만둬…외국 항공사 취업해 로마로 연수이탈리아 항공사 알리탈리아에 입사해 근무하던 시절의 강효숙 이사.

경쟁률이 8:1이었던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나는 이제 마음껏 놀아볼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라 믿었다. 그 이유는 고3 물리시간에 책에 머리를 묻고 자던 나를 일으킨 선생님이 “대학 가면 실컷 놀 텐데, 그 시간을 위해 공부하는데 그것도 못 참고 자냐”고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나는 고3을 무사히 마쳤으니 대학에서는 신나게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1970년대 대학생에게는 놀 거리라는 게 별로 없었다. 여고 동창의 주선으로 떼 지어 미팅을 나가면, 하던 소리를 또 하고 또 듣고 하는 게 지루했다.

우리 과엔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 검정고시를 치른 친구들이 있었다. 시골에서 대학을 올 수 없는 형편을 헤치고 입학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서울에 살던 나는 전혀 알 수 없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일상이 어떤 이들에게는 치열하게 분투해야 얻어낼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1년 내내 검은 반코트 군복을 입고 사는 친구도 있었다. 내 눈에는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어느 눈 오던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서강대 앞에서 대학로의 옛 서울대까지 걸어가며 모든 포장마차에 들러 인사를 했다. 학생증을 받아주는 곳이 있으면 막걸리를 얻어먹고 인사하고 또 걷고 했던, 인심 좋은 시절이었다. 돈은 없어도 호기로 가득한 그때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이 두려움 없이 일을 저지르는 나의 행보에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

1학년 1학기 말, 1학년 지도교수가 나를 불렀다. 원칙대로 하면 내 성적은 C여야 하지만, A를 줬다고 했다. 내가 그 과목에서 A를 받지 못하면 학사경고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못 다녀?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엄마였다. 엄마는 열심히 잘 놀며 대학생활하는 딸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엄마의 유일한 바람은 막내딸이 ‘청바지를 벗고 얌전한 원피스를 입고 다녔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런 엄마에게 가장 미안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사진반 동아리방에 앉아있는데, 과에서 가장 비호감이었던 남학생이 놀란 듯 말을 건네왔다. 학과 첫 모임때 여학생들 콧대가 너무 세다고 말했다가 전체 여학생들에게 찍혔던, 멋내기 좋아하는 서울 범생이 친구였다. “무슨 일이 있냐. 평소 너와 달리 무척 기죽어 보인다”며 말을 건 그에게 막막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나를 위로하며 영화나 보러 가자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그와의 데이트가 시작됐다. 그 후 나는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건들거리다 때론 치열하게 토론하고 데모하고 연애하며 지냈다.

1973년 4학년이 된 나는 어느 신문사 수습사원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출근하니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있는 재떨이 청소부터 하라고 했다. 그들은 “뭔 계집애가 기자를 하겠다고” 하며 여자인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살벌한 그곳에서 나는 참혹하게 패배했다. 기자의 꿈을 완전히 접고 2주 만에 나왔다. 본격적으로 한국 탈출 작전을 짜는 데 몰입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다. 여자들이 여권을 가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유학을 가거나 해외연수를 보내주는 외국계 항공사에 취업하거나. 당시 유학은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나는 이탈리아 항공사인 알리탈리아(Alitalia) 한국사무소에 발권과 직원으로 입사했다. 입사한 지 6개월 후 드디어 이탈리아 로마로 연수가 결정됐다. 야호! 18가지 서류를 준비해 여권을 받았다. 정보기관으로부터 정신교육과 소양교육도 받았다. 그렇게 어렵게 받아든 여권을 들고 나는 “사람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놈의 나라, 난 떠난다” 하며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리=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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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에서 호남을 지역구로 둔 중진의원과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어제(16일) 저녁 서울 한 음식점에서 만찬을 하고 통합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만찬에는 옛 국민의당 출신인 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장병완 원내대표, 박지원·조배숙 의원, 정대철·권노갑 고문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는 정대철 고문이 주선해서 이뤄졌으며,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막판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지난 2월에도 '한국정치발전과 제3정당의 길'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식사를 같이하는 등 꾸준히 물밑 접촉을 통해 내년 총선 전 통합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른바 '제3지대론'의 군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평화당에서는 정 대표가 당 대 당 통합 가능성을 시사하고,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도 재결합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통합에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당 대결 구도를 깨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호남을 주축으로 한 이들 세력이 어떤 형태로든 통합해 제3정당을 출현시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인식입니다.

특히 4·3 재보선 참패 후 바른미래당에서 손학규 대표 퇴진론이 제기되는 등 극심한 내홍을 겪는 상황에서의 회동이어서 이러한 통합 논의에 탄력이 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습니다.

다만 어제 회동에서는 가시적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으며, 통합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논의를 이어간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주선 의원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그 어느 때보다 제3지대에 있는 제3정당의 제대로 된 역할이 절대 필요한 시기라 생각하고 국민들도 그것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옛날에 국민의당을 같이 했던 평화당 분들이 함께하자고 이야기를 하니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 의원은 "정계개편의 회오리 속에서 바른미래당은 '소멸되지 않겠느냐' 하는 회의적 관점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세를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신승이 기자(seungy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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