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빠찡고 ╈ 신천지릴게임 ╈╊ 59.reg936.top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 전세자금대출 집주인 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직업에 귀천 없는 영국사회에 대해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개인회생자격
▲ 한영기 ⓒ 김성수 "너, 공부 안 하면 나 주택기금지원 중에 청소나 한다." 주위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매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청소'는 직업이 아니라 '징벌'과 '멸시'로 통한다. 반면 영국에서 청소부는 떳떳한 노동자이며, 심지어 유쾌하기까지 하다. 영국에서 우리 아이들 학교 화장실을 청소하던 아저씨와 아줌마는 우리 아이 국민연금 수령조건 들 사이에서 인기가 만점이었다. 왜냐고? 점심시간마다 슬쩍 사탕을 나눠주고, 학교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주고 선생님 흉을 가장 재밌게 봐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왜 영국은 직업에 귀천이 없고,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까? 또 어떻게 영국은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한국은 대화의 시작이 " 개인회생 수임료 대출 어디사세요?(강남 또는 강북, 아파트 또는 연립주택?)", "어디 학교 나왔어요?, 연봉이 얼마예요?"이다. 반면, 영국은 "어느 축구팀 팬이세요?"나 "얼그레이차 좋아하세요?"다. 물론 영국도 엘리트주의가 없진 않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는 여전히 명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곳 출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면 오히려 "아이고, 잘난 척하네! 그래 잘났어. 정말!"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학벌자랑은 영국에서 '티백 두 번 우린 물', 한국 표현으로는 '김빠진 맥주' 또는 '앙꼬 없는 찐빵' 처럼 밍밍하고 민망하다. 영국 사회분위기는 대체로 'Cool is not trying too hard.' 즉, '너무 노력하는 티를 내거나 잘난 척하면 촌스럽다'는 거다. 그래서 회사면접에서도 "제가 1등만 10번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면접관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이고, 얘 회사 들어오면 매일 야근만 하겠네. 탈락.' 반면, 영국에서는 학업성적보다 '위트' 특별히 유머 감각은 최고의 스펙이다. 영국에서는 "내가 옥스퍼드 나왔어요"보다 "옥스퍼드 다녔는데 그땐 공부보단 펍(선술집)에 더 많이 갔죠!"라고 하면 더 점수를 받는다. 위트, 즉 말의 센스와 유머 감각은 경력보다 높이 평가받는다. 기억하자. 학벌은 이력서에 쓰고, 유머는 사람 마음에 새긴다. 한번은 런던 지하철에서 "Excuse me, I clean trains but I love jazz.(실례합니다. 나는 전철 청소를 하고 재즈를 좋아해요.)"라는 배지를 단 청소부를 본 적이 있다. 그는 평생 청소를 하며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꿨단다. 퇴근 후엔 재즈바에서 연주도 한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댓글로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하지"라는 악플이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선 그가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왜냐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삶의 여유에 풍악을 더할 줄 아니까. 직업엔 귀천이 없다, 귀천을 만드는 건 사람
▲ 한국은 대화의 시작이 "어디사세요?(강남 또는 강북, 아파트 또는 연립주택?), "어디 학교 나왔어요?, 연봉이 얼마예요?"이다. 반면, 영국은 "어느 축구팀 팬이세요?"나 "얼그레이차 좋아하세요?"다. ⓒ heftiba on Unsplash 한국에서 '배달', '청소', '건설 노가다'는 아직도 무시 받는 일이 많다. 하지만 영국에선 이런 직업도 존중받는 생계 방식이다. 택시를 잡으면 처음 보는 택배 기사가 문을 열며 "Good morning! How's your day?(안녕하쇼! 오늘 하루는 어땠소?)" 하면, "You too, mate!"(댁은 안녕하쇼!)로 답변한다. 존중은 직업이 아니라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온다는 걸 자본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인 영국인들은 알고 있다. 물론, 영국도 완벽하진 않다. 귀족주의의 잔재도 남아 있고, 차별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차별을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한국처럼 '엄마 찬스', '아빠 학벌'이 당당하게 언론에 기사화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왜냐면 그런 사람은 'Uncool(자신 없는 또는 매력 없는)'한 사람이니까. 영국에서 'Uncool'은 거의 사회적 사형선고다. 나도 1990년대 후반 영국 여성과 연애할 때 향후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는 장래가 불투명한 그저 가난한 대학원생이었다. 그런데 당시 처음 만난 그 영국 여성의 아버지(나의 장래 장인어른께서)는 당시 나와의 첫 만남에서 선뜻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면 노숙자가 돼도 걱정할 것이 없다. (관련 기사 : "사랑하면 노숙자가 되어도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옥스퍼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존중과 여유 한국은 아직도 '무슨 일 하세요? 연봉이 얼마예요?'나이가 어떻게 돼요?'라는 질문을 가차 없이 한다. 그래서 그런 당돌하고 무례한 질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영국인들이 말하듯, "일을 통해 사는 것이지, 일을 위해 사는 건 아니니까." 또한 영국에서는 직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용기술과 능력에도 큰 가치를 둬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도록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영국에선 몇 백 년에 걸쳐 대를 이어 일하는 기술직 노동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직업에 대한 그들의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우리 동네 열쇠장수도 몇 대에 걸쳐 같은 장소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학력이 필요한 직업과 기술직의 급여 격차도 그리 크지 않다. 아니 사실 기술노동자들도 급여가 많다. 예를 들면, 우리집 배관을 가끔 수리해 주는 배관공은 스페인에 별장을 갖고 있을 정도다. 난 영국에서 의사를 하는 친구와 목수를 하는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때도 좀 충격을 받았다. 두 집의 생활수준이 별로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의사와 목수 친구 연봉은 약 2.5배에서 3배 정도 차이 났다. 그러나 영국에선 연봉이 높은 사람은 소득세를 40%까지 내야하고 여러 복지혜택을 받지 못 한다. 반면 연봉이 낮은 사람은 소득세를 20%만 내거나 아예 면제 받고 각종 복지혜택을 받는다. 이 때문인지 의사 집에는 책이 많고 목수 집에는 나무가 많은 것 외에는 차이점을 찾지 못 했다. 또 의사에게서는 우월감 등을 찾아볼 수 없었고, 목수에게서는 전혀 열등감을 느낄 수 없었다. 사실(이것은 비밀인데) 내가 아내를 만나기 전, 대학원 학생시절 연애하던 옥스퍼드대 출신 영국 여학생은 아무런 우월감을 보이지 않았다. 또 고졸 출신 영국여성과도 데이트를 했는데 전혀 열등감이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옥스퍼드식 수업이 아니라, 펍(선술집)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닐까. 스펙보다 유머, 학벌보다는 남을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 직업보다 인격을 먼저 보는 사회. 그게 진짜 '선진국 마인드'가 아닐까? 우리 동네 영국 주민들도 동네 청소부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분들은 소독약과 같다고 말한다. 그분들이 없으면 우리 동네는 병균과 세균이 득실거리고 우리들의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 있는 박노자 교수가 한번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오슬로 대학교의 교수와 청소부가 다 같이 한 대학직원으로서 같은 노조에 속해 있다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능했던 것도 결국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시커먼 연기를 마시며 공장과 기차엔진을 점검하는 기술자들 덕에 영국의 산업발전과 자본주의 발달이 가능했던 것이다. '학벌 없는 사회', 우리는 만들 수 없을까?
▲ 아내는 나를 '백곰'이라 부르고 나는 아내를 '펭귄'이라 부른다. ⓒ 김성수 지난 1990년 영국에 처음 왔을 때 만난 30대 후반의 한 고졸 농부가 부인은 대학원을 나온 학교 교장인 것을 보고 놀라서 '문화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바로 이것이 내 무의식 중 성차별이었다. 왜 부인이 남편보다 교육을 더 받으면 놀랄 일이고 충격 받을 일인가. 그리고 머리가 좋게 태어나거나 부잣집 자녀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선택사항도 아니지 않은가. 머리가 안 좋거나 가난한 집 자녀로 선택을 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나?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남을 얼마나 친절하고 사려 깊게 대하는가 일 것이다. 부자만, 머리 좋은 사람만,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은, 빈부를 막론하고, 머리가 좋고 나쁨을 떠나, 남녀를 떠나, 피부 색깔을 떠나, 국적을 떠나, 직업에 귀천 없이 모두 다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린 그런 '학벌 없는 사회', '사람 살기 좋은 세상' 을 언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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